나랑
이주여성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09년에 최조로 실시된 '전국 다문화가족실태 조사'의 조사원으로 활동한 때부터였습니다.
2009년 '다문화가족지원법' 시행을 기반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 규모로 진행된 시범적 성격을 포함한 실태조사였습니다. 저는 당시 경기 안산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구)안산외국인지원센터를 통해 조사원으로 선발이 되었습니다. 전국 최초로 실시된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는 결혼이주민의 집을 방문하여 대면으로 조사하는 방식이였습니다. 저와 같은 출신국 결혼이민자를 비롯하여 다양한 출신국 결혼이민자의 집을 방문하여 이주여성의 한국 생활을 직접 눈으로 봤습니다.
조사원으로 활동한 이후, 저는 이주여성의 한국 생활과 적응 나아가 인권을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외국인지원 시설과 기관에 비상근과 상근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먼저 이주여성의 정보 접근과 활용을 위한 활동으로 8개 국어로 발행되는 안산 '하모니' 신문의 몽골 편집위원으로 위촉되어 편집장까지 했었습니다.
정보 접근과 제공으로는 이주여성의 한국 생활 개선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이주여성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의 필요성을 현장에서 경험하면서, 지역에서 이주여성을 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공근로 사업 등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공공근로 사업이 일회성에 그쳐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던 중 가족이 서울로 이사왔습니다. 운 좋게 서울 소재 다문화가족지원 센터에 통번역지원사로 입사했습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다문화가족의 한국 생활과 적응에 크게 관심이 있는 반면, 인권 문제에 소극적이었습니다.
몇 년 후, 제가 하고 싶었던 이주여성 인권 지원 활동할 수 있는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몽골 상담원으로 이직했습니다. 개별 사례를 지원하는 8년 동안, 항상 이주여성 인권 지원 제도와 정책의 한계로 분노가 차오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드디어 나의 마지막 도착지인 이여인터의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주여성 인권 활동을 위해 어려분과 함께 가겠습니다.
마리솔
지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실천을 고민하며 처음 발을 들인 곳이 이주여성상담소였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지만, 상담 현장에서 직간접적인 폭력을 마주하며 보낸 3년은 저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왜 이주여성들과 함께 잘 살아가고 싶어 하는지 말입니다. 혐오와 폭력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제가 찾고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랑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선주민이자 여성으로서, 저의 '사랑하는 존재'가 여자라는 그 명확한 이유를 찾았습니다. 이주여성들과 함께 웃고 분노하며 쌓아온 소중한 경험들을 토대로, 이제 이여인터에서 그 걸음을 이어가려 합니다
편지쓰기를 참 어려워하는 제가 올해에 뉴스레터 제작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소식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이여인터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